
노동
원고는 피고 회사에서 기계장비 설치 및 정비 관련 근로자로 장기간 근무하던 중, 소음성 난청과 어깨 회전근개 손상 등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상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아 요양급여, 휴업급여, 장해급여 등 총 145,368,520원을 수령했습니다. 이후 원고는 피고 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 및 근로계약상 안전배려 의무를 소홀히 하여 상해를 입었으므로, 민법 제390조에 따라 손해배상금 71,652,773원 및 지연손해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의 안전의무 위반이나 그로 인한 상해 발생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산업재해 보상이 사용자의 고의나 과실을 불문하는 사회보장제도인 반면, 민사상 손해배상은 사용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원고 A는 2006년 9월 1일부터 2019년 11월 1일까지 피고 B 주식회사에서 기계장비 설치 및 정비 관련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원고는 2019년 9월 25일 우측 어깨 회전근개 손상 등을, 2021년 3월 30일 양측 감각신경성 난청을 진단받았습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이러한 상해들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아 요양급여, 휴업급여, 장해급여 등으로 총 1억 4천 5백여만 원을 수령했습니다. 하지만 원고는 피고 회사가 87.9db의 소음이 발생하는 작업장에서 무거운 물건 이동 및 반복적인 조립 업무를 시키면서도 귀마개나 어깨 보호기구 등의 안전 장비를 제공하지 않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의무와 근로계약상 안전배려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퇴직금 차액 3,108,970원, 보청기 및 배터리 등 보조기구 비용 연 1,100,000원, 비급여 요양비 7,675,010원, 위자료 54,000,000원을 포함한 총 71,652,773원과 지연손해금을 피고에게 청구했습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귀마개를 지급하는 등 안전 조치를 했으며, 원고의 상해는 퇴사 이후에 진단되거나 기왕증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했습니다.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로 이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보험급여를 받은 경우에도,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인한 민사상 손해배상을 추가로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와, 이때 사용자의 고의 또는 과실 및 상해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여부가 쟁점입니다.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사업주의 의무 또는 근로계약상 안전배려 의무를 위반했거나, 그러한 의무 위반으로 인해 원고가 상해를 입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아 관련 급여를 지급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피고의 과실이 인정되거나 추정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원고의 난청 발생 시점이 퇴사 후 상당 기간이 경과한 점, 구체적인 소음 노출 환경에 대한 설명 부족, 피고의 귀마개 지급 주장, 원고의 오랜 경력과 직무 자율성, 그리고 상해 발생 전부터 장기간 치료를 받아온 기왕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피고 회사의 안전의무 위반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고, 상해와의 인과관계도 명확하게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를 최종적으로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민법 제390조(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가 주된 쟁점이었습니다. 민법 제390조는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채무불이행'은 근로계약 관계에서 피고 회사와 같은 사업주가 근로자인 원고에 대해 부담하는 안전배려의무를 소홀히 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근로자의 생명, 신체,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및 보건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무를 위반하여 근로자가 상해를 입었다면, 이는 채무불이행에 해당하여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업무상 재해 인정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다르다고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산재보험은 업무상 발생한 재해에 대해 사용자의 고의나 과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보상을 지급하는 사회보장제도입니다. 반면, 민법상 손해배상은 사용자의 구체적인 고의나 과실이 있었고, 그 고의 또는 과실이 근로자의 상해 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음을 근로자 측에서 입증해야 합니다. 즉, 산재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회사에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근로자는 회사의 안전의무 위반 사실과 그로 인한 상해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철저히 증명해야 합니다.
업무 중 상해로 인해 회사에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는 근로자는 다음 사항들을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고 산재 보험급여를 수령했더라도, 이는 회사의 과실을 자동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근로자 본인이 회사의 안전배려의무 위반(고의 또는 과실)과 해당 의무 위반이 상해 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입증해야 합니다. 둘째, 작업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소음 수준, 위험한 작업 방식, 안전 장비 미지급 사실 등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료(사진, 영상, 동료 증언, 안전 관리 기록 등)를 수집해야 합니다. 셋째, 상해 발생 시점과 업무 연관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의료 기록과 증거를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퇴사 후 상해 진단이 이루어졌거나, 기존에 앓고 있던 질병(기왕증)이 있는 경우, 상해가 업무로 인해 악화되었거나 발생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의학적 소견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넷째, 회사가 주장하는 안전 조치(예: 귀마개 지급)에 대한 반박 증거를 마련하거나, 그 조치가 충분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단순히 '안전 조치가 없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어떤 조치가 왜 부족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