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이 사건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형식상으로는 하도급 업체의 소속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청의 하도급을 받은 회사(피고 K)의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임금 지급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더 나아가 피고 K가 산업재해 및 불법체류자 고용 문제 등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회사(피고 L)를 내세웠으므로, 피고 L에게도 연대하여 임금 지급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원고들이 피고 K의 실질적 근로자이며, 피고 K와 피고 L은 법인격 남용을 통해 채무를 회피하려 한 동일한 회사로 보아 두 피고에게 미지급 임금 및 지연손해금을 연대하여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원고들은 2018년 8월 1일경부터 2019년 1월 15일까지 O 주식회사로부터 선박 블록제작 작업을 하도급받은 피고 K에 소속되어 피고 K의 지휘·감독을 받고 근로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피고 K는 불법취업 문제 등을 회피하기 위해 N이라는 업체를 형식적인 노무도급 업체로 내세웠습니다. 원고들은 N가 아닌 피고 K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휘·감독 하에 일정한 근무장소 및 근무시간 내에서 근로를 제공했습니다. 2019년 1월 15일경 R 근로자의 사망 산업재해가 발생하자, 피고 K의 실질 운영자 P은 산업재해 책임, 불법체류자 고용, 체불임금 등 책임을 면하기 위해 기존에 설립되어 있던 피고 L을 내세워 O과의 하도급 계약을 양수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원고들은 2018년 12월 1일부터 2019년 1월 15일까지의 미지급 임금을 피고 K와 피고 L에게 연대하여 청구했습니다. 피고들은 원고들이 피고 K가 아닌 N 소속의 직원이며, 피고 K와 피고 L은 별개의 법인이므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맞섰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원고들이 형식적으로 노무도급업체(N)에 소속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원청의 하도급업체(피고 K)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피고 K가 산업재해 및 체불임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기존에 설립되어 있던 다른 회사(피고 L)를 이용하여 사업을 계속한 경우, 피고 L에게도 피고 K와 연대하여 임금 지급 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피고 K와 피고 L이 연대하여 원고 A에게 5,590,000원, 원고 B에게 5,312,000원, 원고 C에게 3,104,750원, 원고 D에게 4,250,000원, 원고 E에게 5,375,000원, 원고 F에게 4,625,000원, 원고 G에게 5,250,000원, 원고 H에게 5,500,000원, 원고 I에게 4,500,000원, 원고 J에게 3,312,000원과 위 각 돈에 대하여 2019년 1월 16일부터 2020년 7월 7일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소송비용은 피고들이 부담하며,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법원은 원고들이 형식적으로는 하도급업체에 소속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피고 K의 지휘·감독을 받은 근로자임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피고 K와 피고 L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로서, 피고 L이 피고 K의 채무 면탈을 위해 이용된 것으로 판단하여 두 회사 모두에게 원고들의 체불임금을 연대하여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고용 관계의 실질을 중시하고 법인격 남용을 통한 책임 회피를 불허하는 중요한 판례입니다.
이 사건에 적용된 주요 법령과 법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민사소송법 제208조 제3항 제2호(자백간주 판결)는 피고가 답변서 제출 없이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거나 제출된 답변서에 변론의 요지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 청구원인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간주하여 판결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 K에 대한 청구는 이 조항에 따라 자백간주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근로기준법 제14조(근로자의 정의)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고 규정합니다. 법원은 이 조항을 바탕으로 고용계약의 형식이 아닌 근로의 실질(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의 구체적, 개별적 지휘·감독을 받는지 여부, 임금 지급 주체 등)을 기준으로 원고들이 피고 K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판단했습니다. 또한, '법인격 부인론'과 '신의성실의 원칙'이 적용되었습니다. 법인격 부인론은 회사가 채무 면탈 등 위법한 목적으로 회사 제도를 남용했을 때, 기존 회사의 채권자가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을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허용하지 않는 법리입니다. 법원은 피고 K와 피고 L의 실질적 지배자(P)의 동일성, 사업 목적 및 본점 소재지의 동일성, 직원 구성의 유사성, 책임 회피 목적의 계약 양수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 K와 피고 L을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로 판단하고, 피고 L에게도 피고 K와 연대하여 원고들에게 체불임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유사한 문제 상황에 처했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근로계약의 형태가 도급이나 용역 계약이더라도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근로를 제공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회사가 불법체류자 고용 등 문제 회피를 위해 형식적인 하도급 업체를 이용한 경우에도, 법원은 근로 제공의 실질을 따져 진짜 사용자를 판단합니다. 둘째, 회사가 채무나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사업의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회사를 설립하거나 이용하는 경우, 기존 회사의 채권자(근로자 포함)는 두 회사 모두에게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법인격 남용에 대한 법원의 엄격한 입장으로, 회사의 폐업 당시 경영상태, 자산 상황, 자산 유용 여부, 대표자 및 임원 구성의 유사성, 사업 목적 및 본점 소재지의 동일성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됩니다. 셋째, 외국인 근로자, 특히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법의 보호를 받아 체불임금 등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불법체류자 고용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했다면, 그 사실 자체가 법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