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금
원고 회사가 피고 회사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고 미지급된 물품대금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피고는 물품대금 산정의 기초가 된 단가 합의가 원고 측의 강박에 의한 것이므로 취소되어야 하거나,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피고는 원고에게 약 17억 3천만 원의 물품대금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원고 A 주식회사는 2011년 7월 7일 피고 주식회사 B와 자동차 부품 제작·공급 위탁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계약에 따라 원고는 2011년 7월경부터 2017년 2월경까지 피고에게 부품을 납품했습니다. 계약 조건에는 부품 단가는 협의로 정하고 급격한 변동 시 조정 신청이 가능하며, 피고는 부품 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물품대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5년 가까이 정단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원고는 물품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2016년 3월 7일경 납품을 중단했다가 대금 지급 후 재개했고, 이후 2016년 3월 14일, 4월 6일, 5월 9일에도 납품 중단을 요구하며 단가 합의서(이 사건 합의) 체결을 요구했습니다. 피고는 원고가 부품 공급을 중단하면 완성차 업체인 E회사에 대한 납기를 지킬 수 없어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었기에, 결국 원고의 요구에 따라 2016년 3월 16일과 5월 9일 총 205가지 부품에 대해 정단가 합의를 했습니다. 이 합의에 따른 미지급 물품대금은 2,314,426,424원이었으나, 원고가 피고로부터 받은 선수금 260,000,000원과 피고에게 지급할 원자재 대금 316,946,326원을 공제한 최종 물품대금은 1,737,480,098원이었습니다. 이에 피고는 원고 경영진(C, D)이 납품 중단을 해악으로 고지하며 강박하여 합의를 유도했으며, 이는 피고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므로 합의를 취소하거나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물품대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맞섰습니다.
피고가 원고에게 미지급 물품대금 약 17억 3천만 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 원고와 피고 사이의 정단가 합의(이 사건 합의)가 원고 경영진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 취소될 수 있는지 여부, 정단가 합의가 피고의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서 무효에 해당하는지 여부
법원은 피고가 원고에게 1,737,480,098원 및 그중 1,371,208,146원에 대하여는 2017년 4월 29일부터, 366,271,952원에 대하여는 2017년 5월 1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하며,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원은 피고가 주장한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및 진의 아닌 의사표시 주장을 모두 기각하고, 원고의 물품대금 청구를 전부 인용하여 피고에게 미지급 물품대금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민법 제536조 제2항 (불안의 항변권):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먼저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더라도, 상대방의 재산 상태가 악화되는 등의 사유로 반대급부를 받을 수 없을 우려가 있는 경우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본 판례에서는 원고가 장기간 물품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던 상황을 근거로, 납품 중단을 요구하며 정단가 합의를 요청한 것이 강박이 아닌 정당한 권리 행사에 해당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법리로 인용되었습니다. 즉, 선이행 의무가 있는 공급자도 이행기가 지난 대금을 받지 못했거나 상대방의 이행 불안이 있을 경우 다음 기간의 공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110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취소):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의 행위가 위법해야 하며, 해악의 고지로써 추구하는 이익이 정당하지 않거나, 해악의 내용이 법질서에 위배되거나, 해악의 고지가 추구하는 이익 달성 수단으로 부적절한 경우에 해당해야 합니다. 본 판례에서는 원고가 미지급 물품대금을 해결하기 위해 납품 중단을 고지하며 합의를 요구한 것이 위법한 강박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민법 제107조 (진의 아닌 의사표시 무효): 의사표시의 진의가 아님을 표의자가 알았더라도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진의'는 표의자가 특정한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생각을 의미하며,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 판례에서는 피고가 비록 합의 내용이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아니었더라도,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합의 의사를 형성한 이상,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계속적 거래 관계에서의 대금 정산 및 계약 관리: 장기간의 계속적 거래 관계에서는 단가 합의, 대금 정산 방식, 지급 기일 등을 계약서에 명확히 기재하고 주기적으로 확인하여 분쟁 소지를 줄여야 합니다. 구두 합의보다는 서면 합의를 통해 증거를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금 미지급 시 공급 중단의 정당성: 민법 제536조 제2항 및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계속적 공급 계약에서 공급자가 과거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상대방의 이행 불안 사유가 있다면, 다음 기간의 선이행 의무(납품)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당한 권리 행사로 강박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주장 요건: 단순히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합의에 이른 것만으로는 강박으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강박이 성립하려면 상대방의 행위가 위법해야 하며, 해악의 고지가 거래 관념상 추구하는 이익에 비해 부당하거나 법질서에 위배되거나 수단으로 부적절해야 합니다. 기업 간 거래에서 "납품 중단" 요구는 상황에 따라 위법한 강박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진의 아닌 의사표시의 의미: 진의 아닌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특정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경우를 의미하며, 단순히 진정으로 바라지 않는다는 잠재적 본심과는 다릅니다.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합의에 이른 경우라도, 그러한 합의의 의사 자체는 존재했다고 보아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 무효를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형사 불기소 처분의 영향: 강박, 공갈 등 형사 고소 사건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사실은 민사 소송에서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주장을 뒷받침하기 어렵게 만드는 간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