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금전문제 · 행정
국가 연구개발 과제의 책임자인 대학교수가 연구비를 사적으로 부당 사용한 사실이 확인되어 사기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해당 교수에게 국가 연구개발사업 참여 제한 1년과 소속 산학협력단에 연구비 환수 처분을 내렸습니다. 교수는 이 처분들이 절차적 하자, 법률유보원칙 위반, 신뢰보호원칙 위반, 재량권 일탈/남용 등의 위법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처분 취소를 청구했으나 법원은 교수의 주장을 모두 기각하며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원고인 A 교수는 2010년 B대학교에 임용된 정교수로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여러 정부 부처가 B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연구과제들의 책임자였습니다. A 교수는 이 연구과제들의 연구개발 업무와 정부 출연 연구개발비 관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2019년 교육부의 B대학교 종합감사 결과, A 교수가 일부 연구개발비를 부당하게 집행한 내역이 확인되었고,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은 현장 실태조사 후 A 교수에 대한 범죄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A 교수는 수사 결과 기소되었고, 2022년 2월 15일 'B대학교 산학협력단 소속 직원을 기망하여 연구비를 부당하게 지급받거나 선지급된 연구활동비의 부당 사용에 따른 회수를 면하는 등으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는 사기죄가 유죄로 인정되어 벌금 500만 원의 형을 선고받았고, 이 판결은 2022년 2월 23일 확정되었습니다. 이에 피고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확정된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편취 내역을 근거로 연구개발비 4,394,400원의 용도 외 사용을 처분 사유로 하여 2022년 12월 5일 A 교수에게 제재부가금 1,098,600원 및 국가 연구개발사업 참여제한 1년 처분을 내렸고, B대학교 산학협력단에는 연구비 6,591,600원(용도 외 사용금액 4,394,400원에 50% 가중)의 환수 처분을 내렸습니다. 원고는 이 처분들이 위법하다며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피고가 처분의 이유를 충분히 제시하지 않아 절차상 하자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피고가 법령에 명시되지 않은 내부 지침에 따라 연구비 환수액을 가산하여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원고가 부당 집행한 연구비를 반납하고 정산 완료 통보를 받았음에도 추가 환수 처분을 한 것이 신뢰보호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입니다. 넷째, 피고의 참여제한 및 환수처분이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거나 재량권을 벗어나거나 남용한 것인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이 원고에게 내린 국가 연구개발사업 참여제한 1년 처분과 B대학교 산학협력단에 내린 연구비 6,591,600원 환수 처분은 모두 정당하다고 인정되었습니다.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합니다.
법원은 피고의 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원고가 감사 및 형사 절차를 통해 위반 사실과 처분 근거를 충분히 알고 있었으므로, 처분서에 합계액만 기재했더라도 이유 제시 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환수액 결정기준은 상위 법령이 정한 범위 내에서 마련된 재량준칙에 해당하며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연구비 정산 완료 통보가 장래의 제재 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공적인 견해 표명으로 볼 수 없으므로 신뢰보호원칙 위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구비의 공적 성격, 원고의 용도 외 사용 행위의 위법성, 처분의 공익적 목적, 그리고 처분 기준에 따른 참여 제한 기간(1년)과 환수액이 법령의 범위 내에 있고 여러 참작 사유가 이미 반영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적용된 주요 법령과 법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행정절차법 제23조 (처분의 이유 제시) 행정청은 처분을 할 때 그 근거와 이유를 명확히 제시해야 합니다. 이는 처분 상대방이 불복 절차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행정청의 자의적인 판단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다만, 본 판례에서 법원은 원고가 교육부 감사,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실태조사, 형사사건 과정 등을 통해 연구비 부당 사용 내역과 처분 사유를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으므로, 처분서에 용도 외 사용금액의 합계만 기재되었더라도 처분의 이유 제시가 부족하여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구 과학기술기본법 제11조의2 제1항 제5호 및 구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 제27조 제11항 (사업비 환수 처분의 근거) 구 과학기술기본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이 국가 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한 연구책임자가 연구개발비를 용도 외로 사용한 경우 이미 출연하거나 보조한 사업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환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규정은 이 법의 위임을 받아 환수액 결정 기준을 정하였는데, 용도 외 사용 시 '해당 연도 출연금 전액 이내'의 금액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되 위반행위의 경중 등을 고려하여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이는 법령이 환수액의 상한을 정하고 구체적인 액수 결정에 행정청의 재량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법률유보원칙 및 재량준칙 법률유보원칙은 행정 작용이 법률의 근거를 필요로 한다는 원칙입니다. 원고는 피고가 법령상 근거 없이 내부 사무처리준칙인 '환수액 결정기준'에 따라 용도 외 사용금액에 50%를 가산한 것이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환수액 결정기준이 상위 법령이 정한 '해당 연도 출연금 전액 이내'라는 상한 범위 내에서 구체적인 환수액을 정하기 위한 재량권 행사의 기준으로 마련된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재량준칙)이라고 보았습니다. 재량준칙은 그 자체로 헌법이나 법률에 합치되지 않거나 객관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어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인정되지 않는 한 존중되어야 하므로, 이 기준에 따른 처분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신뢰보호원칙 신뢰보호원칙은 행정청의 공적인 견해 표명을 신뢰한 국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원고는 연구비를 반납하고 정산 완료 통보를 받은 것이 피고가 더 이상 제재 처분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적인 견해 표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연구개발비 정산은 공법상 계약에 근거하여 부당 집행된 금액을 반환하도록 하는 성격이 강하며, 법령 위반에 대한 제재적 행정처분인 연구비 환수 처분과는 그 법적 성격이 현저히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정산 완료 통보를 환수 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공적 견해 표명으로 볼 수 없으므로 신뢰보호원칙 위반 주장 역시 이유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량권 일탈/남용 금지 원칙 행정청이 법률에 의해 부여된 재량권을 행사할 때 그 범위를 넘어서거나 목적에 어긋나게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법원은 처분 사유인 위반 행위의 내용, 처분으로 달성하려는 공익 목적, 개인에게 미치는 불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형량하여 재량권 일탈·남용 여부를 판단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연구개발비의 공적 성격과 엄격한 관리 필요성, 원고가 장기간에 걸쳐 연구비를 사적으로 유용한 행위의 위법성, 그리고 처분 기준에 따라 부과된 1년의 참여 제한 기간과 환수액이 법령상 상한 범위 내에 있고 원고의 표창 이력, 탄원 내용, 피해 회복 노력 등 여러 참작 사유들이 이미 반영되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각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부 지원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 자금이므로, 연구 책임자는 이를 정해진 용도와 기준에 따라 투명하고 적정하게 집행해야 합니다. 연구비를 사적인 용도로 부당하게 사용하는 행위는 단순한 회계 규정 위반을 넘어 사기죄 등의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연구비 부당 집행이 적발되면 형사 처벌 외에도 국가 연구개발사업 참여 제한, 연구비 환수 등 엄격한 행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부당하게 집행된 연구비를 반납하고 정산 절차를 완료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부당 이득을 반환하는 성격이므로 법령 위반에 따른 행정 제재 처분(예: 환수 처분, 참여 제한)을 면제받는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행정청이 처분을 내릴 때 처분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이미 감사나 수사 절차를 통해 위반 사실과 처분 근거를 충분히 인지한 경우에는 처분서에 합계액만 기재되어 있더라도 절차적 하자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행정청의 내부 지침(재량준칙)에 따른 처분이라 할지라도, 그 지침이 상위 법령의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마련되었다면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과거에 유사한 연구비 유용 행위로 제재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면, 이후에 발생하는 유사한 위반에 대해서는 더욱 불리한 판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