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 의료
8세 9개월 된 아이 G가 복통과 구토 등의 증상으로 J병원을 세 차례 방문하였으나, J병원 의료진은 급성 충수염(맹장염)을 진단하지 못하고 위장염 및 결장염으로 오진하여 적절한 치료 없이 퇴원 조치하거나 상급병원으로의 전원 조치를 지연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이의 충수염은 천공되어 거대 농양과 복막염으로 악화되었고, 뒤늦게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전원되어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패혈증 등으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사망한 아이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은 J병원의 운영자인 피고 F와 서울대학교병원의 운영자인 피고 법인을 상대로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J병원의 오진과 치료 지연, 전원 조치 미흡 등을 의료과실로 인정하여 피고 F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했으나, 서울대학교병원의 수술 및 배액관 관리에는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여 해당 청구는 기각했습니다.
아이 G는 2019년 12월 30일 상복부 복통과 구토, 발열 등의 증상으로 J병원 응급실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당시 백혈구 수치가 높았지만, 위장염으로 추정 진단받고 약 처방 후 귀가했습니다. 그러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다음 날인 12월 31일 다시 J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습니다. 복부 초음파 검사에서 '소장 및 대장 폐쇄 가능성', '회장염' 소견과 함께 '복부 CT 검사 권유'가 있었으나, 주치의는 단순 위장염 및 결장염으로 진단하고 CT 검사 없이 항생제 등 약물치료만 시행했습니다. 아이는 입원 중에도 복통과 설사, 고열이 지속되었고, 2020년 1월 2일 혈액 검사에서는 백혈구와 CRP 수치가 현저히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1월 3일부터 증상이 일시적으로 호전되자 1월 4일 퇴원 조치되었고, 1월 7일 외래 진료를 예약했습니다. 퇴원 후에도 아이는 극심한 복통과 고열을 호소했고, 1월 7일 J병원 외래 진료 시 주치의는 '급성 복증'을 진단하고 상급병원 진료용 소견서만 발급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다음 날인 1월 8일 L병원을 방문했고, L병원에서는 '천공된 충수염과 거대 농양 형성, 복막염'을 진단받고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전원 조치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1월 9일 응급 충수절제술을 받았으나, 이미 심각하게 진행된 염증과 합병증으로 인해 수술 3일 후인 1월 12일 패혈증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에 망 G의 유족들은 J병원의 진단 및 치료 지연 과실과 서울대학교병원의 수술 후 관리 과실을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J병원 의료진이 아이의 급성 충수염을 제때 진단하지 못하고 치료를 지연시킨 과실이 있는지, 그리고 상급병원 전원 조치 및 보호자에 대한 설명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이 수술 후 배액관 관리 등 진료 과정에서 과실을 저질러 아이의 사망에 영향을 주었는지 여부도 쟁점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각 피고의 의료과실과 아이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그리고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법원은 J병원 의료진의 의료과실을 인정했습니다. 아이 G는 2019년 12월 30일 J병원 1차 내원 시부터 충수염 증상을 보였고, 12월 31일 2차 입원 시 복통, 발열, 구토, 설사 등 충수염이 의심되는 증상과 혈액 검사상 백혈구 수치 및 CRP(염증 반응 수치)의 급격한 상승이 있었음에도, J병원 주치의는 위장염 및 결장염으로 오진하여 적절한 검사(CT 등)와 치료를 소홀히 했습니다. 특히 복부 초음파 검사 결과에 '소장 및 대장 폐쇄 가능성'이나 '회장염'이 언급되었고, 복부 CT 검사를 권유받았음에도 주치의는 이를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소아 충수염 진단에 초음파의 위음성률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소홀은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로 판단되었습니다. 또한, 임상 증상 호전에도 불구하고 염증 수치가 높은 상태에서 퇴원을 결정하면서 추적 검사를 하지 않은 점, 2020년 1월 7일 3차 진료 시 '급성 복증'으로 진단하고도 상급병원 응급실로의 전원 조치나 보호자에게 응급진료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과실도 인정되었습니다. 이러한 J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충수염 진단 및 치료가 지연되어 아이의 충수염이 천공되고 복막염 및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사망에 이른 인과관계가 인정되었습니다. 다만, 아이 측이 퇴원 후 고열과 복통 증상이 심했음에도 예약일인 1월 7일까지 J병원이나 다른 응급실을 방문하지 않은 점, 소아 급성 충수염 진단이 어려운 특성 등을 고려하여 J병원 운영자인 피고 F의 책임을 50%로 제한했습니다. 한편,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에 대해서는 수술 시 배액관 삽입 위치와 개수, 수술 후 배액량 변화에 대한 조치, 급속한 상태 악화에 따른 추가 조치의 시간적 제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의료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피고 F는 망 G의 일실수입, 치료비, 장례비, 위자료 등을 책임 제한 50%를 적용한 금액과 원고들의 고유 위자료를 합산하여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이 사건은 의료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에 해당하며, 특히 의사의 주의의무와 관련하여 다음 법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의사의 주의의무: 의료인은 환자의 생명, 신체, 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특성상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과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당시 의료기관 등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는 의료행위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진단상의 주의의무: 진단은 치료법 선택의 출발점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의사는 전문직업인으로서 요구되는 의료 윤리, 의학지식, 경험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환자를 진찰하고 정확히 진단함으로써 위험한 결과 발생을 예견하고 회피하는 데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특히 소아의 경우 충수염과 같은 질환의 증상이 비정형적이고 오진율이 높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초음파 등 검사의 위음성률(정상으로 오인하는 비율)이 높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다른 검사(예: CT)의 필요성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전원 조치 의무: 의사가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하거나 최선의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신속히 전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 조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특히 '급성 복증'과 같이 위중할 수 있는 진단명이 나왔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지도·설명 의무 (의료법 제24조 참조): 의사의 주의의무는 의료행위 종료 후에도 환자가 후유증이나 합병증 발생 가능성을 예견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요양 방법, 건강 관리에 필요한 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지도하는 데까지 미칩니다. 퇴원 시 응급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안내뿐만 아니라, 진단받은 질환의 특성상 발생 가능한 중대한 합병증이나 악화 시의 구체적인 대처 방안에 대해 환자 또는 보호자에게 명확히 설명해야 합니다.
의료과실로 인한 인과관계 증명책임 완화: 의료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피해자 측이 과실 있는 의료행위를 증명하고, 해당 행위와 결과 사이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 의료행위 측이 의료상의 과실이 아닌 다른 원인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의료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습니다. 다만,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막연한 추정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복통, 구토, 발열 등과 같은 복부 증상을 지속적으로 보이거나, 기존 진료 후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양상을 보인다면 반드시 다시 병원을 방문하여 의료진에게 상세히 알려야 합니다. 진료 과정에서 의료진의 진단명이나 처방, 권유 사항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거나 추가적인 설명을 듣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질문하여 충분히 설명을 들어야 합니다. 복부 초음파 검사 등 영상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임상 증상(복통, 고열 등)과 혈액 검사(백혈구, CRP 등) 결과가 여전히 비정상적이거나 악화된다면, 다른 질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추적 검사나 추가적인 정밀 검사(예: 복부 CT)가 필요한지 의료진과 적극적으로 상의해야 합니다. 특히 의료진으로부터 '급성 복증'과 같이 위급 상황을 암시하는 진단명을 들었을 경우에는 해당 의료기관에서 전문적인 외과적 처치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지체 없이 외과 진료가 가능한 상급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여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소아의 급성 충수염은 성인과 달리 비특이적인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진단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보호자는 아이의 미묘한 증상 변화도 의료진에게 상세히 전달하고 의료진이 진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해야 합니다. 퇴원 시 의료진으로부터 '고열, 통증 시 응급 진료 필요' 등의 설명을 들었다면, 해당 증상이 발현되었을 때 즉시 안내받은 대로 행동하여 적절한 시기에 다시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