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 의료
희귀 질환인 거대세포 심근염으로 사망한 환자의 아버지 A가 E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법인 B와 담당의사 C, 응급실 당직의사 D를 상대로 진단 및 응급조치상 과실을 주장하며 총 437,069,760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법원은 의료진에게 진단상 과실이나 응급조치상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진료기록부 조작 등 입증방해 행위도 없었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망인 F은 2016년 3월 16일 저녁부터 고열이 발생하여 3월 17일 새벽 E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가 증상 호전 후 귀가했습니다. 그러나 3월 17일 오후 다시 고열 증상으로 E병원을 방문, 피고 C에게 진료를 받고 당일 입원하여 검사를 받았습니다. 3월 18일, 망인의 상태가 호전되었고 병문안 온 친구들과 외부 음식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8시 14분경 구토를 시작으로 메스꺼움, 명치 및 배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19시 37분경 화장실을 다녀온 뒤 울음소리를 내고 허공을 응시하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담당간호사가 응급실 당직의사인 피고 D에게 보고했고, 피고 D이 19시 49분경 병실에 도착했을 때 망인은 통증 자극에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피고 D은 산소 주입, 기도삽관 준비, 상급병원 전원 지시 후 심장마사지를 시작했으나, 망인은 20시 06분경 구급차로 H병원으로 이송 중 심장이 멈췄고, H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21시경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망인의 사인은 거대세포 심근염으로 밝혀졌습니다. 망인의 아버지 A는 병원 측의 진단 및 응급조치 과실로 아들이 사망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법원은 담당의사 C에게 망인의 거대세포 심근염을 미리 진단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웠고, 시행된 대증치료와 포도당 주사 처방이 부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진단상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응급실 당직의사 D과 간호사의 응급조치가 당시 상황에서 적절했으며, 희귀 질환의 급속한 진행과 나쁜 예후를 고려할 때 즉각적인 응급조치를 했더라도 회복이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 응급조치상 과실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진료기록부 조작 주장에 대해서도 시간 오차와 기록 정황을 종합하여 조작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피고들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아 의료법인 B의 사용자 책임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의료 과실과 손해배상 책임: 의료 행위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므로 높은 수준의 주의 의무가 요구됩니다. 의사에게는 환자의 건강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며 필요한 경우 상급 병원으로 전원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의사가 이러한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하여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하면,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에 따라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때 의료 과실은 의료 행위가 의료 수준에 비추어 적절했는지, 예측 가능한 위험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됩니다. • 사용자 책임: 병원 법인과 같은 사용자는 피고용인인 의사 또는 간호사가 그 직무를 수행하다가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민법」 제756조(사용자의 배상책임)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임은 피고용인의 과실이 인정될 경우에만 적용되므로, 본 사례처럼 의료진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으면 사용자 책임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 진료기록부의 작성 및 증거 능력: 「의료법」 제22조(진료기록부 등)에 따라 의료인은 환자의 진료에 관한 기록을 상세히 작성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진료기록부는 의료 행위의 과정과 내용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며,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료기록부의 기재에 일부 오차가 있더라도 당시의 상황이나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하여 고의적인 조작이나 중대한 과실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진료기록부의 신뢰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 인과관계의 입증: 의료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는 의료진의 과실뿐만 아니라 그 과실과 환자의 손해(사망 등)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본 사례에서는 거대세포 심근염이라는 질병 자체가 급성으로 진행되고 예후가 매우 나빠, 의료진의 조치가 적절했더라도 사망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학적 판단이 인과관계 입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 의료 과실이 없거나, 설령 일부 과실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아님을 법원이 인정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 희귀 질환 진단의 어려움: 매우 드문 질환의 경우, 초기 증상이 일반적인 질환과 유사하여 의료진이 즉각적으로 희귀 질환을 의심하고 정밀 검사를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의료진에게 과도한 진단 의무를 부과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 응급 상황 대처의 적절성: 응급 상황 발생 시 의료진의 대처가 당시 환자의 상태, 의학적 지식, 그리고 진료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절했는지 여부가 중요하게 판단됩니다.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과실이 인정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 질병의 예후와 인과관계: 질병 자체가 급격히 진행되고 예후가 매우 나쁜 경우, 설령 의료진의 조치가 일부 미흡했더라도 그러한 미흡함이 환자의 사망으로 직접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망 원인이 의료 과실보다는 질병 자체의 치명적인 특성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될 수 있습니다. • 진료기록부의 신뢰성: 진료기록부의 시간 기재에 약간의 오차가 있더라도, 당시의 응급 상황과 기록 작성 환경 등을 고려하여 고의적인 조작이나 입증 방해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과실 추정의 근거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