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전지 구매계약 해제와 계약보증금 귀속 분쟁

주식회사 A는 한국전력공사와 변전소용 축전지 구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 과정에서 축전지 시험성적서의 규격 기준과 시험 항목에 대한 혼선이 발생했습니다. 주식회사 A는 특정 규격과 항목에 맞춰 시험성적서를 제출했지만, 한국전력공사는 다른 규격과 더 많은 시험 항목을 요구하며 기한 내 미제출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보증금을 귀속하겠다고 통지했습니다. 이에 주식회사 A는 계약 해제 통지의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한국전력공사의 계약 해제가 적법하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관련 당사자

• 주식회사 A: 급속 충전기 및 그 부품의 제조 판매 등을 영위하는 회사로, 한국전력공사에 축전지를 납품하려던 업체입니다.
• 한국전력공사: 전력자원의 개발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공기업으로, 주식회사 A와 축전지 구매 계약을 체결한 발주처입니다.

분쟁 상황

한국전력공사는 변전소용 축전지 구매 입찰 공고를 내면서 기존 KSC 8505 규격에서 KEPIC EEG-1000 규격으로 시험 및 검사 기준을 변경했습니다. 주식회사 A는 이 입찰에 참여하여 2020년 6월 23일 한국전력공사와 축전지 960개 납품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 체결 후 주식회사 A는 2000년판 KEPIC EEG-1000 규격에 따라 8개 시험 항목 중 6개 항목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제출했지만, 한국전력공사는 2005년판 KEPIC EEG-1000 규격에 따라 총 11개 항목의 시험성적서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시험성적서 미제출을 이유로 납품기한 연장을 거부하고 계약 해제를 통보했습니다. 이에 주식회사 A는 납품기한 연장 합의, 한국전력공사의 신뢰 위반, 시험성적서 제출 의무의 부수성, 그리고 요구 조건의 국가계약법 위반을 주장하며 계약 해제 통지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핵심 쟁점

본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납품기일 연장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 둘째, 한국전력공사가 시험 항목을 번복하여 주식회사 A의 신뢰를 위반했는지 여부 및 시험성적서 미제출에 대한 주식회사 A의 귀책사유 존재 여부. 셋째, 시험성적서 제출 의무가 계약 목적 달성에 중요한 의무인지 아니면 부수적인 의무에 불과한지 여부. 넷째, 한국전력공사의 시험성적서 요구 조건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상 부당한 특약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주식회사 A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즉, 한국전력공사가 축전지 구매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보증금을 귀속하겠다고 통지한 것은 적법하다고 보았습니다.

결론

법원은 계약상 납품기일 연장 합의가 없었고, 주식회사 A가 시험성적서 제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으며, 그 책임은 주식회사 A에게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시험성적서 제출이 계약 이행에 필수적인 중요한 의무이며, 한국전력공사의 시험성적서 요구 조건이 국가계약법상 부당한 특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한국전력공사가 주식회사 A의 시험성적서 미제출 및 납품기한 내 물품 납품 미완료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한 것은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연관 법령 및 법리

본 사건에서는 주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과 '물품구매계약 일반조건'이 적용되었습니다.

1. 국가계약법 제5조 제3항 및 제4항 (부당한 특약 금지)​:

   • 국가계약법은 계약담당공무원이 계약상대자에게 불이익한 특약이나 조건을 부당하게 정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만약 부당한 특약이 있다면 그 효력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 조항은 계약 당사자 간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 법원은 한국전력공사가 축전지의 품질 확보를 위해 KEPIC EEG-1000 기준을 적용한 것이, 변전소 정전 등 비상시 전력 공급이라는 중요한 설비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며, 특정 업체에게만 유리하거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엄격한 품질 기준 적용이 공공기관의 정당한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라면 이를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입장입니다.

2. 물품구매계약 일반조건 제29조 제1항 제1호 및 제2호 (계약 해제 사유)​:

   • 이 조건은 계약상대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거나, 납품기일 내에 납품할 가능성이 없음이 명백할 경우(납품기한까지 시험성적서를 제출하지 못한 경우 포함) 발주처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계약 이행의 불확실성을 방지하고 발주처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 법원은 주식회사 A가 약속한 시험 항목 중 일부를 제출하지 않았고, 한국전력공사가 여러 차례 이행을 최고(독촉)했음에도 보완하지 못했으며, 결국 납품기한 내에 계약된 규격의 물품 납품을 완료하지 못했으므로, 한국전력공사의 계약 해제가 적법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계약상대자가 계약에서 정한 중요한 의무, 특히 물품의 품질을 증명하는 시험성적서 제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그 책임은 계약상대자에게 있으며, 발주처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원칙을 따른 것입니다.

3. 계약상 의무의 중요성 (부수적 의무 주장 배척)​:

   • 주식회사 A는 시험성적서 제출 의무가 계약 목적 달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수적 의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축전지의 규격 및 성능 확인을 위한 시험성적서 제출은 계약 이행에 있어서 전제되어야 할 중요한 내용이라고 보아 주식회사 A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물품의 품질과 성능을 보장하는 서류 제출이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계약의 핵심적인 부분임을 강조하는 판결입니다.

참고 사항

유사한 구매 계약 상황에서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을 꼼꼼히 확인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1. 계약 규격 및 시험 기준 명확화: 입찰 공고 및 계약서상의 물품 규격, 시험 및 검사 기준, 그리고 적용되는 규격의 개정판(예: 2000년판, 2005년판)을 계약 체결 전 반드시 명확히 확인하고,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면 서면으로 질의하여 답변을 받아 두어야 합니다. 구두 협의는 추후 분쟁 발생 시 입증이 어렵습니다.
2. 시험 항목 및 기한 확인: 요구되는 시험 항목의 개수와 각 시험에 소요되는 기간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하고, 납품 기한 내에 모든 시험성적서를 제출할 수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특히 장기간이 소요되는 시험이 있다면 계약 조건에 미리 반영하거나 납품 기한 연장 가능성을 협의해야 합니다.
3. 담당자의 권한 확인: 계약 내용의 변경(예: 납기 연장, 규격 변경)에 대해 담당자와 협의할 경우, 해당 담당자가 그러한 변경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권한 없는 담당자와의 협의는 법적 효력을 갖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4. 서면 기록 유지: 모든 중요한 협의 내용, 변경 요청, 회신 등은 반드시 서면(공문, 이메일 등)으로 기록하고 증빙 자료를 철저히 보관해야 합니다. 이는 추후 분쟁 발생 시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됩니다.
5. 계약서의 중요성: 계약서에 명시된 모든 조건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계약 내용과 다른 방식으로 이행하거나 임의로 판단하여 일부를 제외하는 등의 행위는 계약 해제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