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해 · 강도/살인 · 노동
이 사건은 철도 선로 유지보수 작업 중 근로자들이 열차와 충돌하여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친 사고와 관련한 판결입니다. 시야 확보가 어려운 곡선 구간에서 충분한 열차 감시 인원을 배치하지 않고, 작업 현장의 높은 소음에도 불구하고 부적합한 무전기만 지급하여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한국철도공사와 관련 책임자들이 기소되었습니다. 원심의 법리 오해와 양형 부당이 인정되어 항소심에서 원심 판결이 파기되고, 관계자들에게 벌금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이는 안전 관리 책임자의 구체적인 주의 의무와 사업주의 관리·감독 의무를 강조하는 동시에, 피해자 유족의 처벌 불원 의사 등 여러 양형 요소를 고려한 결과입니다.
2019년 10월 22일 오전 10시 14분경, 한국철도공사 G부서 소속 근로자들은 L 소재 M역 구내 곡선 선로 구간에서 선로면맞춤 및 줄맞춤 유지·보수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선임장 C 외 4명의 작업자가 참여했는데, C는 작업 현장에서 약 820m 떨어진 곳에서 열차감시원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문제는 C의 위치와 작업 현장이 굽은 선로 구간으로 육안으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작업 현장의 피고인 D이 무전기를 소지하고 C로부터 열차 진입 경보를 수신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면맞춤 작업을 하던 핸드핼드 타이 탬퍼 기계의 소음(약 100103dB)이 무전기 소음(약 8586dB)보다 훨씬 커 피고인 D은 C의 'O 하선 열차 접근' 무전을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작업자들은 열차의 접근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작업을 계속했고, 사고 열차가 전방 49m 지점에서 뒤늦게 작업자들을 발견하고 비상제동 및 기적 취명(약 60dB)을 했음에도 H, J, K는 열차를 인지하지 못하고 충돌하여 J가 사망하고 K와 H가 상해를 입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작업계획서에는 곡선부 등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곳에 열차 감시자를 추가 배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C 1명만이 배치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1명만 배치하는 관행이 시정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 A(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 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상 책임 여부, 한국철도공사(사업주)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 및 관리·감독 의무 소홀에 대한 양벌규정 적용 여부, 피고인 B(부서장)의 작업계획서 검토 및 현장 관리·감독 의무 위반 여부, 피고인 C(선임장/열차감시원)와 D(작업자)의 현장 안전조치 소홀 여부, 사고 당시 작업 현장의 소음 수준과 지급된 무전기의 성능이 안전 신호 전달에 적합했는지 여부, 그리고 원심 판결의 적용 법조 오류 및 양형 부당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 A에게 벌금 2,000만 원, 피고인 한국철도공사에게 벌금 5,000만 원, 피고인 B, C, D에게 각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벌금을 납입하지 않을 경우 각 10만 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동안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명하고, 벌금 상당액의 가납을 명령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 A에 대한 원심의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었고, 피고인들의 양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대신 안전 관리 책임자와 사업주의 구체적인 안전 관리 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 유족의 처벌 불원 의사 및 피고인들의 직장 상실 우려 등 여러 양형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은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 관리 의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도, 관련 책임자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함께 고려한 판단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에는 주로 구 산업안전보건법 및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적용되었습니다. 구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제2항은 사업주에게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한국철도공사는 사업주로서 이 의무를 다하지 않아 책임이 인정되었습니다. 구 산업안전보건법 제71조는 양벌규정으로, 법인의 사용인(관리감독자 포함)이 업무 관련 법 위반 행위를 한 경우 그 법인에게도 벌칙을 적용합니다. 재판부는 피고인 A가 한국철도공사의 사용인으로서 사업주 의무 위반 행위자에 해당하며, 양벌규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구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11조 및 구 안전보건규칙 제38조 제1항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총괄관리 의무와 궤도 보수 작업 시 작업계획서 작성 및 이행 의무를 규정하며, 열차 운행 감시인에게 작업에 적합한 신호 장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신호 장비가 현장 상황에 비추어 충분하지 않다면 추가 장비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업무와 관련하여 다해야 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사람을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 성립하며,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 A, B, C, D 모두 각자의 업무상 구체적 주의의무 위반으로 사고 발생에 기여한 과실이 인정되었습니다.
유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작업 현장의 특성(시야 확보, 소음 수준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안전 조치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특히 시야가 가려지는 곡선 구간에서는 열차 감시원을 2인 이상 배치하여 다중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한 명이 신호를 놓치더라도 다른 감시원이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작업 환경에 적합한 신호 장비를 지급해야 합니다. 현장의 소음이 큰 경우 무전기 외에 확성기, 경보기, 진동 감지 장비, LED 경광등 등 다양한 보조 신호 장비를 함께 사용하거나, 더 높은 출력의 무전기를 사용하여 위험 신호가 확실하게 전달되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안전 관리 책임자는 형식적인 작업계획서 작성에 그치지 않고, 그 계획이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는지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합니다. 오랜 관행으로 인해 안전 수칙이 무시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시정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넷째, 작업자는 물론 모든 관리·감독자가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안전 주의의무를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안전은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지켜진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