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피고 소유 어선에서 발생한 화재로 원고의 어구가 소실되어 원고가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원고는 어선 내 전기 설비 관리 부실로 화재가 발생했다며 어선법과 민법에 따른 책임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서 등의 화재 원인 조사 결과 구체적인 화재 발생 원인이 불명확하며, 설령 전기적 문제라도 피고가 관리할 수 없는 영역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고, 피고가 어선 정기 및 임시 검사를 받았던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의 방호 조치 의무 위반이나 공작물 설치 보존 상의 하자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원고의 주장을 기각하고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17년 11월 29일 오후 12시 58분경, 피고 소유의 어선 E호가 동호항에 정박했습니다. 같은 날 오후 10시 16분경 E호 부근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E호가 전소되었고, 바다로부터 부는 바람에 의해 인근에 계류 중이던 통발배 H호 및 원고 소유의 어구 등이 함께 불에 탔습니다. 원고는 E호 내 배전반 차단기와 연결된 전선의 접지 불량으로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는 어선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피고의 과실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어구 제작비 73,165,000원, 어구 제작 기간 동안의 영업수익 110,606,320원, 위자료 10,000,000원 등 총 193,771,320원 중 일부인 130,000,0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한편, 피고 및 E호 기관장에 대한 관련 형사사건에서는 업무상 실화 및 해양환경관리법 위반에 대해 '혐의없음(증거불충분)' 불기소 결정이 내려진 바 있습니다.
어선 소유자가 자신의 선박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인근 피해가 발생했을 때 민법상 공작물 설치 보존의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나 어선법상 관리 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지 여부, 그리고 피해자가 그 책임을 충분히 입증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입니다.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고 항소 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즉,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항소심 법원 역시 피고 소유 어선의 설치 및 보존상 하자가 있었다거나 피고가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방호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어선 화재로 인한 주변 어구 소실에 대한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원고의 청구를 최종적으로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주로 두 가지 법률과 관련된 법리를 바탕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 2009년 전부 개정된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은 과거와 달리 손해배상액의 경감에 관한 특례 규정만을 두고 있을 뿐, 손해배상 의무의 성립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화재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일반 민법의 규정에 따라 판단됩니다.
민법 제758조 제1항 (공작물책임): 이 조항은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 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법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선법 제23조: '어선의 소유자는 제21조에 따른 어선의 검사 또는 제22조 제1항에 따른 건조검사를 받은 후 해당 어선의 선체·기관·설비 등을 임의로 변경하거나 설치하여서는 아니 되며, 선체·기관·설비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운영되도록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여 어선 소유자의 관리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고는 피고가 이 규정을 위반하여 화재가 발생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피고가 정기 및 임시 검사를 받는 등 방호 조치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사한 화재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가해자의 책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첫째, 화재 원인 조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서, 대검찰청, 선박안전기술공단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조사 결과에서 구체적인 발화점과 원인이 명확히 밝혀져야 손해배상 청구에 유리합니다. 원인 불명의 화재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과실 또는 공작물 하자를 입증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둘째, 공작물(선박, 건물 등) 소유자의 관리 및 방호 조치 의무 이행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정기 검사, 임시 검사 이력, 시설물 점검 및 유지 보수 기록 등은 소유자가 의무를 다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셋째, 화재가 발생한 시설물 소유자의 지배 및 관리 범위를 벗어난 영역에서 발생한 화재는 소유자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배전반과 배터리 사이 전선의 전류 차단이 물리적 분리 외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참작되었습니다. 넷째, 관련 형사사건에서 무혐의 결정이 나왔다면 민사소송에서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한 책임 입증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설령 상대방이 화재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거나 일부 보상을 논의했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 한 손해배상 의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