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원고 A 주식회사는 피고 D 주식회사와 약 27억 원 규모의 설비 제작 및 설치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하며, 피고의 대금 지급 거부를 이유로 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 또는 제작대금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 사건 공사계약의 본질적 사항이나 중요 사항에 대한 합의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모든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원고는 2022년 1월에서 2월경 피고와 약 27억 원 규모의 설비 제작 및 설치 계약을 체결하고 설비 제작을 완료했으나, 피고가 제작대금 지급을 거부하자 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 또는 제작대금의 지급을 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피고는 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다투었습니다.
약 27억 원 상당의 대규모 공사 계약에서 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고 주요 계약 조건(공사대금, 납품기한, 대금지급시기, 하자보수, 지체상금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던 상황에서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입니다.
법원은 원고의 주장이 이 사건 공사계약의 성립을 전제로 하는데, 원고와 피고 사이에 계약의 본질적 또는 중요 사항에 대한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아 원고의 주위적 및 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법원은 원고가 피고에게 공사에 관한 견적서를 발송하고 피고가 공사 진행을 지시했으며, 일정을 공유하고 피고 직원이 설비 상태를 확인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사정들을 종합하여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첫째, 27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공사 계약임에도 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고 이는 이례적인 점입니다. 둘째, 견적서 교환 후에도 공사대금에 대한 이견이 있었으며, 장래 대금 산정 기준에 대한 합의도 없었습니다. 셋째, 원고가 청구한 설비 제작대금 액수가 여러 차례 변경되었고 산정 기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넷째, 원고 측 이사가 계약 미진행으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메일을 발송한 사실이 있어, 계약의 본질적 사항에 대한 합의 부재를 시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납품기한, 대금지급시기, 하자보수, 지체상금 등 공사계약의 본질적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내용에 대한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계약의 본질적이거나 중요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의사가 합치되거나, 적어도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대법원은 "당사자가 의사의 합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표시한 사항에 대하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은 성립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5다34437 판결 등 참조). 또한 청약은 그에 응하는 승낙만 있으면 곧 계약이 성립하는 구체적, 확정적 의사표시여야 하므로, 계약 내용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봅니다(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7다242867 판결 등 참조). 본 판례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수십억 원대 공사대금, 납품기한, 대금지급시기, 하자보수, 지체상금 등 계약의 중요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나 이를 특정할 수 있는 기준 및 방법에 대한 합의가 없었음을 지적하며, 비록 견적서 발송, 작업 지시, 일정 공유 등의 일부 사실은 있었으나, 이것만으로는 계약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고액의 계약에서 중요 조건에 대한 합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고액의 거래나 복잡한 계약일수록 반드시 서면 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이는 분쟁 발생 시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공사대금, 대금지급시기, 납품기한, 작업 범위, 하자보수 책임, 지체상금 등 계약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항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합의하고 이를 문서화해야 합니다. 견적서와 실제 청구 금액이 일치하도록 하고, 대금 산정 기준과 내역을 상세히 명시하여 불필요한 오해나 분쟁의 소지를 줄여야 합니다. 계약 진행 과정에서 주고받은 견적서, 작업 지시, 회의록, 이메일, 문자 메시지 등 모든 의사소통 기록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계약 성립 여부 및 내용에 대한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계약의 핵심 조건에 대한 합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작업을 진행할 경우, 추후 대금을 받지 못하는 등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므로, 합의가 완료될 때까지 작업을 유보하거나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진행하는 것이 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