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
주식회사 A의 ERP 개발팀 부장 B는 상급자인 전무이사 E의 지시에 따라 창업주 F를 포함한 임원들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ERP 시스템에서 조회하여 E에게 USB로 전달했습니다. 이후 국세청 세무조사 및 언론 보도 등으로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외부로 알려지자, 회사는 B가 업무상 비밀 및 기밀을 누설했다고 판단하여 징계해고했습니다. B는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B와 E 모두 ERP 시스템 접속 권한이 있었으므로 징계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B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B의 행위가 업무상 비밀 누설에 해당하며 징계해고는 정당하다고 판단하여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했습니다.
주식회사 A의 전무이사 E는 2023년 3월과 4월경 ERP 개발팀 부장 B에게 창업주 F의 퇴직 처리 여부 및 F과 임원 전체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하고 정리해 줄 것을 지시했습니다. B는 ERP 시스템에 접속하여 해당 정보를 확인한 뒤 E에게 보고하고, USB 저장장치를 통해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정리하여 전달했습니다.
이후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 F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이 불거졌고, 회사는 내부 조사를 통해 B가 E에게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회사는 이 행위를 업무상 비밀 및 기밀 누설로 간주하여 2023년 9월 1일 B를 징계해고했습니다.
B는 이에 불복하여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였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24년 1월 24일 B와 E 모두 ERP 시스템을 통해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할 권한이 있었다는 이유로 징계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 B의 구제신청을 인용했습니다. 회사가 재심을 신청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 또한 2024년 4월 26일 같은 이유로 회사의 재심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이에 주식회사 A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해당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근로자가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ERP 시스템에서 임원의 법인카드 사용내역과 같은 회계자료를 조회하여 전달한 행위가 '업무상 비밀 및 기밀 누설'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이에 따른 해고 징계가 회사의 징계재량권을 남용한 것인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중앙노동위원회가 주식회사 A와 B 사이의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에 관하여 한 재심판정을 취소했습니다. 이는 B에 대한 징계해고가 정당함을 인정한 것입니다.
법원은 임원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업무상 비밀 및 기밀'에 해당하며, ERP 개발팀 부장인 B가 자신의 업무 범위를 넘어선 권한 남용으로 해당 정보를 조회하고 정당한 권한이 없는 상급자 E에게 전달한 행위는 업무상 비밀 누설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B의 오랜 직장생활 경험과 직급을 고려할 때 E의 지시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응했고, 회사 내부 조사 과정에서 책임을 회피하려 한 점 등을 종합할 때 징계해고가 사회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회사의 징계재량권 행사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주로 회사의 취업규칙 및 근로계약서상 '업무상 비밀 및 기밀 누설'을 징계해고 사유로 인정한 법리에 근거합니다.
1. 업무상 비밀 및 기밀의 정의와 누설 행위:
법원은 임원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회계·감사팀, ERP시스템 관리자 등 접근이 허가된 소수의 관련자를 제외하고는 그 정보를 입수하기 어려운 회계자료로서, 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관리되는 정보이므로 '업무상 비밀 및 기밀'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업무상 비밀 및 기밀의 '누설'에는 해당 정보에 접근할 정당한 권한이 없는 다른 임직원에게 이를 전달한 행위도 포함된다고 보아, B가 상급자 E에게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전달한 행위 자체를 비밀 누설로 인정했습니다.
2. 근로자의 정보 접근 권한 및 책임:
B는 ERP 시스템 개발 및 운영 업무를 총괄하는 부장으로서 시스템 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법원은 B의 업무가 ERP 시스템의 개발·운영에 국한되며, 그 권한을 남용하여 자신의 업무와 무관한 임원의 법인카드 사용내역까지 무제한적으로 조회하거나 자료를 반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단순히 시스템 접근 권한이 있다고 해서 모든 정보에 대한 열람 및 반출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며, 자신의 직무 범위 내에서만 정당한 권한 행사가 인정됩니다.
3. 상급자의 지시 정당성 여부 판단:
E 또한 재무·회계 등과 관련된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임의로 조회하거나 보고받을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B가 E의 지시에 따랐다 하더라도 이는 정당한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며, B 역시 이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근로자는 상급자의 지시가 법규나 회사 규정에 위배될 경우 이를 거부할 책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4. 징계재량권 일탈·남용 여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으며(제23조 제1항), 징계해고의 정당성은 징계사유의 존재뿐 아니라 징계 양정이 사회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것인지 여부도 심사합니다. 법원은 다음 사정들을 종합하여 회사의 징계해고가 재량권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회사의 정보 시스템 접근 권한이 있다고 해서 해당 시스템 내 모든 정보를 무제한적으로 열람하거나 외부로 반출할 권한까지 갖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정해진 업무 범위를 벗어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민감한 정보를 조회하고 유출하는 행위는 징계의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상급자의 지시라도 그것이 부당하거나 회사의 규정 및 법령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면, 단순히 지시에 따르기보다는 그 적법성을 확인하거나 거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업무상 비밀이나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다룰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업무상 비밀 및 기밀의 '누설'은 정보를 외부에 직접 공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당 정보에 접근할 정당한 권한이 없는 다른 임직원에게 전달하는 행위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부 임직원 간이라도 민감 정보 전달 시에는 반드시 정당한 절차와 권한을 준수해야 합니다.
회사는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에 업무상 비밀 유출에 대한 징계 규정을 명확히 명시하고, 임직원들에게 정보 보안 교육 및 보안 서약서 징구 등을 통해 비밀유지 의무를 철저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USB 등 외부 저장장치 사용에 대한 규정을 엄격히 관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