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로 구금된 민주화운동 피해자와 가족의 국가배상 기각 판결

원고 A는 1975년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고 10개월간 구금되었습니다. 이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생활지원금 16,204,080원을 수령하였으며,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원고 A와 그의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들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긴급조치 제정 및 적용, 수사 과정의 불법행위, 출소 후 불법사찰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 A가 생활지원금을 수령하면서 제출한 동의서에 따라 본인의 위자료 청구는 '재판상 화해' 효력으로 인해 부적법하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긴급조치 제정 및 적용, 당시 수사 및 재판 행위는 불법행위로 인정되지 않았고, 개별적 불법행위(영장 없는 체포·수색, 가혹행위, 불법사찰) 주장은 증거 부족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구속기간 30일을 초과한 구금은 불법행위로 인정되었으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5년이 지나 이미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여 원고 A의 부모 상속분 및 나머지 가족들의 청구도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관련 당사자

• 원고 A: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속, 유죄 판결 후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어 생활지원금을 수령한 당사자.
• 원고 B, C, D: 원고 A의 배우자와 자녀들로, 원고 A가 구금되었을 당시에는 혼인 및 출생 전이었음.
• 원고 E, F, G, H, I, J: 원고 A의 형제자매들.
• 피고 대한민국: 원고들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된 국가.
• 망 X, 망 Y: 원고 A의 부모로, 각각 1975년과 1997년에 사망하였음.

분쟁 상황

이 사건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으로 인해 부당하게 구금되고 유죄 판결을 받았던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그 가족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정신적, 물질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며 발생했습니다. 주된 쟁점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 여부,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금 수령의 법적 효력 범위, 그리고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 제기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 적용 문제였습니다.

핵심 쟁점

1.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른 생활지원금 수령 동의가 민사소송법상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지 여부와 그 효력이 미치는 범위.
2.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 수사기관의 긴급조치 적용 수사 및 법관의 긴급조치 적용 재판 행위가 국가배상법상 공무원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3. 수사과정에서의 불법 구금, 가혹행위, 영장 없는 수색 및 출소 후 불법사찰이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4.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 완성 여부 및 신의칙 위반 또는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5. '동의 및 청구서'가 약관법 위반 또는 민법상 반사회질서 법률행위, 불공정한 법률행위,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무효 또는 취소될 수 있는지 여부.

법원의 판단

1. 원고 A 본인의 위자료 청구: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 수령 시 제출한 '동의 및 청구서'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발생시키므로, 원고 A 본인의 위자료 청구는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각하되었습니다.
2. 원고 A의 망 X, Y 위자료 상속분 청구 및 나머지 원고들(배우자, 자녀, 형제자매)의 청구: 민주화보상법상 재판상 화해의 효력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본인이 입은 피해에 한정되며 유족 고유의 위자료 등 유족의 피해에까지 미치지 않으므로, 이 부분 청구는 부적법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본안 판단 결과 피고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제1심에서는 이 부분도 각하했으나, 항소심에서는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에 따라 제1심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3. 불법행위 여부:
   • 긴급조치 제9호의 제정행위 및 이에 따른 수사·재판 행위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사후적으로 위헌·무효가 선언되었더라도 곧바로 국가배상법상 불법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 수사과정에서의 개별적인 불법행위(가혹행위, 가족·변호인 접견 금지) 주장은 증거 부족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 다만, 구 형사소송법상 최대 구속기간인 30일을 초과하여 원고 A을 구금한 행위(총 81일 구금)는 불법행위로 인정했습니다.
   • 출소 후 불법사찰 주장 역시 증거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4. 소멸시효 완성: 위 구속기간 초과 불법행위는 인정되나, 원고 A이 석방된 1976년경으로부터 약 37년이 경과한 시점(2013년)에 소가 제기되었으므로, 구 예산회계법(현 국가재정법)에 따른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5년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여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였습니다.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5. '동의 및 청구서'의 유효성: '동의 및 청구서'가 약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며, 민법상 반사회질서 법률행위, 불공정한 법률행위,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무효 또는 취소된다는 원고 측의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론

항소심 법원은 제1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 B, C, D, E, F, G, H, I, J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원고들의 항소와 원고 E의 이 법원에서의 청구 확장도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소송 총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자 본인의 직접적인 위자료 청구는 '재판상 화해'로 각하되었고, 가족들의 청구를 포함한 다른 모든 청구는 불법행위 불인정 또는 소멸시효 완성으로 기각되었습니다.

연관 법령 및 법리

1.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이 법에 따른 보상금 등의 지급 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경우,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봅니다. 이는 위자료를 포함한 피해 일체에 효력이 미치나, 유족 고유의 위자료 등 유족의 피해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법리가 적용되었습니다.
2.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판례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나 당시 위헌이 선언되지 않은 법령에 따른 수사·재판을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3. 형사소송법 제325조: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 또는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무죄를 선고합니다. 본 사건에서는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무효로 인한 무죄 판결이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전단)'에 해당하며, 이 경우 수사기관의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의 인과관계 인정이 어렵다는 법리가 적용되었습니다.
4. 구 형사소송법 제202조, 제203조, 제205조: 사법경찰관의 구속기간 10일, 검사의 구속기간 역시 10일(1회 연장 시 최대 20일)로, 공소제기 전 구속 가능한 최대 기간은 30일로 규정합니다. 이를 초과하여 구금한 행위는 형법 제124조 제1항의 불법체포·감금에 해당하여 국가의 불법행위가 인정됩니다.
5. 구 예산회계법(현 국가재정법) 제96조: 국가에 대한 금전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권리는 불법행위 발생일로부터 5년 동안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합니다. 본 사건에서는 이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불법행위가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손해배상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6.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원고 측은 '동의 및 청구서'에 기초한 화해계약이 반사회적 또는 불공정하여 무효이거나 착오로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7.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의 사인 간 거래에 적용되는 법률로, 국가가 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동의 및 청구서'에는 약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8.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 항소심에서 항소인에게 불이익하게 제1심 판결을 변경할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원고 A의 부모 위자료 상속분 청구에 대해 제1심은 부적법 각하했지만, 항소심에서 본안 기각 사유가 있었음에도 이 원칙에 따라 제1심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참고 사항

1. 특별법상 보상금 수령 시 주의: 민주화보상법과 같은 특별법에 의해 보상금이나 생활지원금을 받을 경우,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향후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니, 동의서 내용과 법적 효력을 신중히 검토해야 합니다. 본인의 직접적인 피해에 대한 청구는 이 효력에 의해 제한될 수 있습니다.
2. 가족의 고유한 손해배상청구권: 본인이 특별법상 보상금을 받아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하더라도, 가족들이 입은 고유의 정신적 고통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에는 그 효력이 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청구도 별도의 불법행위와 손해 발생, 소멸시효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3.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국가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5년 내에 행사해야 한다는 소멸시효 규정이 엄격히 적용됩니다. 장기간이 지난 후에는 아무리 부당한 국가의 행위가 있었더라도 시효 완성으로 청구가 기각될 수 있으므로, 권리 행사를 늦추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효의 기산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객관적인 장애 사유가 없는 한 시효가 진행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4. 국가기관의 직무행위 위법성 판단: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나, 당시에는 위헌으로 선언되지 않았던 법령에 따른 공무원의 직무행위는 사후에 해당 법령이 위헌으로 결정되더라도 곧바로 국가배상법상 불법행위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개별적인 불법행위(예: 가혹행위)를 주장하려면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5. 재심 무죄 판결의 종류와 국가배상: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그 무죄 사유가 '적용 법령이 위헌·무효인 때(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해당하는 경우와 '범죄 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해당하는 경우에 따라 국가배상청구권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자(전단)의 경우에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의 인과관계가 쉽게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