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굴삭기 기사였던 망인 E은 개인사업자로 건설 현장에서 굴삭기 작업 중 현장소장의 지시로 중량물을 옮기다 굴삭기 전도로 사망했습니다. 망인의 유족인 원고는 현장소장인 피고 B과 도급인인 피고 C 주식회사에 대해 불법행위 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망인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피고들에게 민법상 사용자 책임이나 도급인 책임,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망인 E은 'G'라는 상호로 건설기계대여업 및 전문건설 하도급업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자였습니다. 망인은 2021년 9월경 피고 C 주식회사와 부산 동래구 공사 현장에서 굴삭기를 기사와 함께 대여하고 작업하기로 계약하고, 현장에서 직접 자신의 굴삭기를 운전하며 작업해 왔습니다. 2021년 12월 16일, 망인은 이 사건 공사 현장에서 피고 C 주식회사의 현장소장인 피고 B으로부터 약 1.81톤 무게의 도로경계석 묶음을 옮겨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망인은 굴삭기 바가지 대신 지게발을 부착하고 도로경계석을 들어 올린 뒤 후방으로 옮기기 위해 굴삭기를 회전시키던 중, 도로경계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굴삭기가 운전석 쪽 측면으로 전도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망인은 개방된 운전석 문밖으로 떨어졌고, 전도된 굴삭기에 깔려 압착성 질식으로 사망했습니다. 망인의 자녀인 원고 A는 피고 B의 업무상 과실(안전조치 미흡)에 따른 불법행위 책임과 피고 C 주식회사의 사용자 책임 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의무 위반을 주장하며 총 525,682,384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피고 B은 이 사고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고, 망인의 유족을 위해 2,000만원을 공탁했습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하여 망인의 유족에게 장례비 11,729,120원과 유족급여 107,442,400원을 지급했습니다. 또한 이 사건 굴삭기의 자동차보험사에서도 자기신체사고 사망 보험금으로 1억원을 지급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피고 B과 피고 C 주식회사에게 망인 E의 사망에 대한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 책임(사용자 책임, 도급인 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피고 C 주식회사 및 피고 B이 산업안전보건법상 망인 E에 대한 안전조치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망인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관련 형사사건에서의 유죄 판결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인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원고가 피고들에게 청구한 주위적 청구(공동 불법행위)와 예비적 청구(연대 책임)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소송에 들어간 모든 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법원은 망인이 독립적인 개인사업자로서 피고 C 주식회사에 전속되어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피고들에게 민법상 사용자 책임이나 도급인 책임, 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은 주로 민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다음 조항들을 적용하고 해석했습니다.
1. 민법 제757조 (도급인의 책임) 도급인은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수급인이 그 일에 관하여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고들이 망인에게 도급 또는 지시에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2. 민법 제756조 (사용자의 배상책임) 타인을 사용하여 어느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는 피용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도급인과 수급인의 관계에서는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한 경우에만 실질적으로 사용자 및 피용자의 관계와 같다고 보아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법원은 피고 C 주식회사(도급인)가 망인 E(수급인)의 작업 방식에 대해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순히 공사 진행이 설계도나 시방서대로 되는지 확인하는 공정 감독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3. 산업안전보건법 제62조, 제63조, 제64조 (도급인의 안전보건총괄책임 및 안전조치 의무) 이 조항들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함께 작업하는 경우 도급인에게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지정하고 안전 및 보건 시설 설치, 작업장 순회점검 등 필요한 안전조치 의무를 부과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에서 망인 E이 '수급인 또는 건설기계 임대인'일 뿐, '수급인의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 조항들이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4. 산업안전보건법 제77조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등) 이 조항은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하여 업무상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무를 제공받는 자에게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부과합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할 것 (망인 E은 건설기계 운전 직종에 해당하여 이 요건은 충족했습니다.) ②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 ③ 노무를 제공할 때 타인을 사용하지 아니할 것 법원은 망인 E이 건설기계 대여업을 영위하는 독립된 개인사업자로서 이 사건 계약기간 동안 피고 회사에 제공한 작업 일수가 짧고 다른 사업장에도 작업을 제공할 수 있었던 점, 그리고 다른 굴삭기 기사를 사용할 수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②와 ③의 '전속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피고들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보호의무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중장비 작업 시에는 작업 지시를 내리는 관리자뿐만 아니라 작업자 본인도 안전 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중량물 운반 시에는 정격 인양하중을 확인하고 굴삭기 본래 용도 외 사용을 지양하며, 운전석 문을 닫고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등 기본적인 안전 조치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현장 관리자는 독립된 사업자라 하더라도 작업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법에 대해 지휘감독을 하는 경우, 민법상 사용자 책임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작업 지시 시 안전 관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건설기계 대여업자 등 개인사업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 즉 '주로 하나의 사업에 상시적으로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과 '노무를 제공할 때 타인을 사용하지 않을 것' 등을 충족하는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산안법상 보호를 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형사사건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민사 법원에서 별도의 증거 판단을 거쳐 책임 유무와 범위를 결정합니다. 개인사업자의 경우 산재보험 외에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여 추가적인 보험 가입 등 자체적인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